| 내가 만난 서른 살의 김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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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e824
│
2017-09-22 19:4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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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서른 살의 김광석....
내 나이 서른이던 1990년 4월이나 5월의 봄날로 기억된다.
여의도 KBS에서 한 청년을 만났다.
'동물원',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멤버로 활동했던
다운타운 가수였던 청년은 라디오 음악방송에서
DJ를 보고 있었다.
청년의 키는 180cm의 내 키의 어깨쯤에 닿을
정도였으니 아마 많아야 170cm 정도의 키였고
체중은 65kg정도의 외소한 청년이었다.
청년의 말씨는 서울말씨는 아니었고 강원도
말씨가 묻어 있는 듯 했다.
청년은 청바지차림을 좋아했다.
그의 얼굴은 때묻지 않는 순박해 보인 얼굴이었고
그의 성격은 여리고 한없이 나약해 보였으며
평소 외로움을 많이 타는 듯 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야학의 철학강사를 하던
나는 청년에게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개인 철학과외였다.
묵자의 평화사상, 노자-장자의 철학,
맹자의 혁명사상, 고대그리스정치철학
, 플라톤의 공산국가, 존 로크의 자연법,
루소의 혁명철학, 칸트의 도덕철학,
헤겔철학 등에 대해 강의를 한 것으로 기억된다.
뿐만 아니라 한 달 뒤에 결혼하는 청년을
위해 헤겔의 "정신현상학"의 '주인과 노예의식'편의
변증법적 '사랑학'과 '이별학'도 들려주었다.
......
[젊은 남녀의 사랑은 자연적인 것이며 본능적인 것, 감성적인 것이다.
이 자연적이고 본능적이며 감성적인 사랑은 쉽게 변할 수 있는 것이다.
두 젊은 남녀는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을 영원히 영위하는 것을 보장받기 위해
결혼을 통해 인륜의 태 즉 윤리 속으로 들어온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이성이 지배하는 윤리 속에서 두 사람의 사랑을 보장받게 된다.
처음의 이 두 사람의 사랑은 자연적, 육체적, 직접적인 사랑이었다.
쉬운 말로 이것이 섹스였다.
자연 상태에서는 섹스를 통해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했다.
인륜의 태 속에 들어와 사랑을 한 젊은 두 사람은 사랑을 통해 자식을 두게 된다.
두 사람의 사랑의 변증법적 산물이 자식이다.
섹스를 통해 서로를 사랑하던 부부는 자식이 생긴 뒤부터는
자식을 통해 배우자를 사랑한다.]
......
그 청년에게 전해주던 사랑학의 첫 강의이다.
.......
[어떤 행태로든지 배우자에게서 등을 돌린자는 패배자이다.
네가 그 여자가 싫으면 그녀로 하여금 널 떠나게 하라.
그리고 떠난 그녀가 멀리가서 " 너를 버리고 떠나왔노라" 말하게 하라.
떠난 그녀는 승자가 아닌 패자요. 배신 받은 넌 패자가 아닌 승자이다.]
그 청년에게 전해 주던 이별학이다.
......
[인간은 누구나 하나의 섬이요. 대륙이다.
네가 태어날 때 그것은 우주에 있어서 한 혹성이, 지구에 있어서 한 대륙이
생성하는 것과 같고, 네가 죽어갈 때 그것은 우주에 있어서 한 혹성이 지구에
있어서 한 대륙이 소멸하는 것과 같다.]
......
청년에게 생명의 존엄을 강조하며 존단의 시귀를 들려주던 내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이 내 귀를 울린다.
.............
청년은 내 손을 꼭 쥐고 얼굴을 꺾어 내 큰 키에
달린 입술만 쳐다보며 숨도 쉬지 않고 작은 움직임도 없었다.
청년은 내 강의에 놀란 듯 했다.
이윽고 내 강의가 끝났다.
나는 젊은 철학도에 너무 매혹되는
그 청년을 의아해 하며 대학 전공을 물었다.
청년은 명지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외 사생활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는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윽고 내 강의가 끝났다.
나는 청년에게 행운을 빌며 작별을 고하며 손을 내밀었다.
청년은 머뭇거리며 내 손을 잡았다.
청년은 내 손을 놓지 않고 내게 물었다.
"사부님 몇 살이에요?."
"61년 소띠, 서른 살"
청년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저도 61년 소띠, 서른 살이에요."
나는 청년의 나이를 의심치 않았다.
청년은 잠시 뒤 잡은 내 손을 뜨겁게 흔들며 애원했다.
"우리 친구해요. 네. 우리 친구해요."
"...... "
나는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나는 지금 아주 먼 길을 가는 중이에요."
나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길을 떠났다.
내 뒤로 남은 청년이 바로 가수 김광석이었다.
......
1996년 1월 7일, 이 날은 내 결혼기념일이었다.
그날 그 청년의 자살보도를 들었다.
갑자기 어딘가 모르게 우수에 젖은 그의 얼굴이
생각났다.
나는 그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고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그가 타살됐을 것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지금부터 27년 전의 일이다. 아직도 그 청년이
오래 토록 잡은 내 오른쪽 손 언저리에
그 청년의 온기가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온기는 연내 내 팔을 타고 뜨거운
심장을 압도하고 차가운 내 머리를 점령한다.
그러면 그 날, 내게 갈망하던 그 청년의 모습과
목소리가 들린다.
'사부님, 우리 친구해요. 네, 우리 친구해요.'
....
지난해 나는 우연히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그 때 그 청년이 내게 나이를 속였다는 것을
알았다.
나를 만난 그 청년은 61년생이 아닌 64년생이었다.
그는 세른 살이었던 나보다 세 살 어린
스무일곱이었다.
왜 청년 김광석은 내게 자신의 나이를 속이면서
세 살이나 많은 내게 친구하자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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