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1250년부터 1350년 연간에 고려에서 제작된 고려청자잔입니다.
잔이 두텹고 두들이면 쇠소리가 납니다.
전라도 강진지방 도요지에서 생산된 청자잔입니다.
고려 인종 재위 연간인 1120년부터 1250년까지 발달 된
고려순청자는 얇고, 그 청자 자기가 고유색상인 비취색을
띠기 시작합니다.
1123년 인종원년 4월에 송나라에서 사신으로 왔던 서긍이 올린
고려에 관한 비밀첩보인 "선화봉사 高麗圖經"에게 따르면
이 때 고려에서 생산된 고려청자는 가늘과 그 색상이 비취색으로
인간의 간장을 녹여 놓을 만큼 아름답다 쓰고 있습니다.
이 때 전라도 강진 등에서생산된 고려청자는 왕의 잔치상이나
서재의 어탁 위에 감상용으로 놓여졌습니다.
그리고 이 고려청자는 당시 중국에서 수입되 귀중한 옥과 함께
보배로 여겨졌습니다.
이 발달된 고려청자는 1150년의 인종의 죽음과 함께 그의 대를 이어
즉위한 인종의 아들 의종에
의해 또 다른 계기로 발달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계기가 바로 고려상감청자였습니다.
보위에 오른 의종은 고려의 모든 국력을 총동원해
이 청자발달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물론 이렇게 발달돼 상산된 고려상감청자는 왕의 전유물로서
국왕만이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일반백성들이 이 고려청자를 사용할 경우 멸문지화를 당했습니다.
또 고려청자를 생산한 사람들은 모두 후백제의 패망과정에서 전쟁포
로 붙잡힌 노예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생산된 고려청자는 국왕과 왕실 종친들의 잔치상의 그릇과
왕실의 서재의 서탁의 위에 감상용으로 놓여 졌습니다.
물론 일반 고급관리들은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의종은 상감청자를 개발했지만 그는 정중부에 의해 폐위돼 비명에 죽
었기 때문에 그의 무덤에 가져가지 못했습니다.
고려 상감청자는 의종의 동생 명종의 무덤에 최초로 부장품으로
넣어 졌습니다.
여기서 발견된 모든 청자들이 오늘날 우리들 곁에 각종 국보와 보물
로 지정된 고려청자들입니다.
이 발달된 상감청자는 무신정권의 전유물이 됐습니다.
그러나 이 상감청자는 인종 때 빚어진 순청자보다 아름다워 보였지만
질이 조잡했습니다.
상감청자는 빚기도 힘들었으며 상감청자의 기법상 가마 온도를
맞추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의종 때 제작된 상감청자느 인종 때 만들어진 순청자보다
질이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고려 순청자와 상감청자는 무신정권이후 무신들의 전유물이
되다가 몽고의 침입과 원나라의 지배로
약 150-200년 동안 그 생산이 단절됐습니다.
그리고 1350년경에 다시 이 상감기법이 고려 땅에 나타나기 시작했
습니다.
명종의 무덤에서 발견됐던 고려상감청자는 170여년 뒤 죽은 공민왕비
노국공주무덤에서 다시 발견되시 시작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보시고 계신 이 순청자는 1300-1350년경에 고려에서
제작된 순청자입니다.
그릇 안에 아무 문양이 없으며 굽 안까지 모두 유약이 발라져 있습니다.
깨어지거나 실금 하나 없는 완벽한 잔입니다.
상감기법을 넣지 않았기 때문에 그릇은 단단하고 무겹습니다.
수집용으로 구입하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