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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엽 고려 강진지방 도요지에서 제작된 고려청자 사발입니다.
정확한 제작연대는 1250-1300년대로 보시면 됩니다.
사용 용도는 밥그릇 또는 차사발, 물그릇, 등으로 사용됐던 그릇입니다.
이 청자가 만들어졌던 시기는 고려가 몽고 즉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시기로 고려에 원나라 풍속이 유행하던 때입니다.
고려에 원나라 풍속과 원나라 생활도자기들이 유행하게 된 것은 고려의
세자들과 왕자들이 모두 원나라 황실이 있는 북경 외갓집으로 유학을
떠나고 영의정을 비롯해 수많은 고려의 고급관리들이 이 세자와 왕자
들을 호위해서 북경에 가 있었기 때문에 원나라가 지배한 100년 동안
은 고려는 모두 원나라 풍습으로 삼천리가 물결쳤습니다.
물론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충혜왕, 공민왕 등 직계 5대가 8번에 거쳐
원나라 공주를 왕비로 맞았습니다.
어린 세자들과 왕제들은 10세 정도가 되면 영의정을 수반으로 편성된
수십 명의 고급관리들을 데리고 원나라 서울 북경으로 떠났습니다.
무식한 사람들은 이 세자들과 왕자들이 모두 인질로 잡혀갔다고 하
지만 사실, 고려의 세자들과 왕자들이 원나라로 간 것은 인질이 아니
라 외할아버지가 황제로 있는 북경 외갓집으로 유학을 떠난 것입니다.
그리고 북경에 가 있는 세자와 왕자 그리고 그들을 호위한 관리들을
위해 고려의 백성 수천 명이 고려에서 북경까지 길을 잇고 고려에서 한
해 동안 생산된 수십만 섬의 곡물을 북경으로 운반했습니다.
그리고 고려의 부왕이 죽으면 북경에 있던 세자나 왕자는 황제의
군사의 호위를 받으며 고려로 돌아와 새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새로 돌아온 새 임금은 원나라 옷을 입고, 원나라 말을 하고, 원나라
공주를 맞고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원나라 도자기를 사용했
습니다.
이 새 왕을 모시고 온 고려의 고급관리들도 그랬습니다.
몽고가 고려를 지배한지 20-30년이 지난 어느 날,
그 때 척박한 고려 땅에서 소외된 삶의 입에 풀칠하려던 우리들의
조상들은 고려산천을 보았습니다.
여기저기서 모든 양반들이 고려의 풍속이나 생활 자기들을 내 던지고
원나라 것을 요구했습니다.
원나라 물품들은 날개 돗친 듯 팔리기 시작했고, 고려의 정체성이 깃든
것은 팔리지 않았습니다.
고려의 상인들은 원나라 물품을 모방해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려의 옷을 만들던 사람들은 고려의 옷을 내던지고 원나라 옷을
만들기 시작했고, 고려의 도자기를 빚던 사람들은 고려의 도자기를
내던지고 원나라 도자기를 빚었습니다.
원나라 상인들은 원나라 도자기를 실고 고려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신안 해저 유물선이 바로 이 때 중국 양자강 이남 월주요에서 그릇을
구워 실고 고려도자기 산지인 강진, 해남지방으로 들어오다 다도해 그만
바윗섬에 부딪쳐 그만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왜 원나라 도자기를 실은 배가 고려의 서울 개성으로 가지 않고 고려의
도자기 주요산지인 해남 강진지방으로 갔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마 당시 고려사람들은 고려에서 중국 도자기를 모방해 구운 도자기를
더 선호했던가 봅니다.
그래서 원나라 상인들은 해남 강진으로 가서 고려에서 구운 고려
도자기와 원나라 도자기를 섞어 마치 원나라 도자기들이 고려 도자기인
것처럼 팔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원나라 강남지방 월주요에서 구워져 강진 해남지방에 들어온
도자기들은 고려 도자기와 함께 전국으로 팔려 나갔을 것으로 보입니다.
때로는 일본으로도 건너가기도 했고, 때로는 만주지방이나 그 너머
시베리아로도 보내졌을 것입니다.
여기에 올린 이 도자기는 용도가 밥그릇으로 정확한 제작 연대는
1250년에서 1300년으로 보시면 정확할 것 같습니다.
이 밥그릇을 제작했던 제작지는 전남 강진지방입니다.
원나라에서 도자기를 실고 남해안에 들어온 신안해저 보물선이 가라
앉던 시기에 만들어진 도자기로 보시면 더욱 정확합니다.
(글 : 대한독립쇼핑몰 인터넷규장각 대표 김영식 / 문의 : 017-303-4140 )